고난당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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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당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곳은 감람산이었습니다. 밤중의 감람산은 추운 기온이었습니다. 42-‘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의 기도가 얼마나 오랜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처절한 기도였는지 모릅니다. 43-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누가복음22: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1.하나님이 고난 당하셨습니다.
빌라도는 법정에서 군인들에게 예수님을 채찍질하라고 명령합니다.
마27:26-‘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 당시 로마 군인들의 채찍은 끝부분에 뼈 조각이나 쇠 조각이 달려 있었습니다. 긁히는 상처는 기본이었고 심지어 살갖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30- 그에게 침 뱉고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예수님은 골고다라고 하는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막15:22-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4-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막 15:34-‘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의 절규하는 기도에 하나님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듣지 못하셔가 아니었습니다. 힘이 없어서는 더욱 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과 함께 그 고통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고난당하실 때 하나님도 수치와 고통을 당하시고 계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하나님께서 고난을 당하셔야 되었을까요?
‘죄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대로 인간인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께 대신 받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머리의 가시 면류관을 씌우심은 우리 머리로 지은 죄 때문,
예수님께서 가슴에 채찍을 당하심은 우리 마음의 죄 값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두 손과 두 발에 못 박히심은 우리의 두 손이 지은 죄, 두 발이 지은 죄를 대신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죽음은 바로 우리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당하셨습니다. 골고다는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갈보리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인 해골위에 세워졌습니다.
죽음인 해골인 골고다 위에 갈보리위에 생명이신 예수님의 피가 흘러내립니다. 해골 곧 죽음의 자리가 생명을 만나는 자리가 됩니다.
자신이 해골 곧 시체와 다름이 없다고 깨닫는 사람만이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공의와 사랑이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제물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제사장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영혼이 떠나실 때 마27:51-‘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제사가 십자가로 변경되었습니다. 내가 준비해야 할 제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제물이 되어 주신 겁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대 제사장이 되어 주셨습니다.
바울은 롬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 하겠느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전에는 골고다는 죽음이었습니다.
인생의 종착역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되었습니다. 사랑이 죽음을 이겼습니다.
 
3. 예수님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1;25~26의 말씀입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과거에 예루살렘교회가 사울의 회심을 믿지 않을 때 변호해주었던 사울을 생각했습니다. 사울의 가말리엘의 수제자인 동시에 사울의 지성과 학문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필요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175km 떨어진 다소로 직접 간 것은 목회가 어려울 때가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무리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13년 동안 고향 다소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울을 안디옥에 초대하여 공동 목회를 하였습니다. 1년이 되어 갈 무렵 안디옥교회는 더욱 더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 밖 사람들에게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롬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 하겠느냐’.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전2: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갈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고백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자신을 부르시고, 당시 최고의 학문을 하였음에도 썩어질 세상의 최고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늘나라의 최고로 삼으시는 예수님이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부르신 예수니께서 책임져주시고, 한치의 오차 없이 이끌어주신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공의와 사랑의 마침표가 되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드리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202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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