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작은 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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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세 사람(행10:1-8) 
2,000년 전 기독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지역적인 종교였습니다.
이때 기독교가 세계를 향해 나갈 전환점이 필요하였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보잘 것 없던 갈릴리출신 어부들을 중심으로 생활했던 어부들과 이스라엘 선민이라는 의식에 갇혀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무너져 내리기 사작하는 혁명적인 만남을 계획하셨습니다.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처럼 지금까지 유대민족 중심의 기독교에서 세계적인 기독교로의 전환이 필요하였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복음이 세계를 향해서 나가는 일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 명령을 받았습니다.
가이샤라의 백부장 고넬료(뿔)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가이샤라는 팔레스타인의 중요항구 도시이며 로마정부 수도가 있었습니다.
헤롯대왕은 스트라토의 성채 터에다가 거대한 방파제로 보호되는 웅장한 도시와 멋진 항구를 건설하였습니다. 가이샤라라는 명칭이 사도행전에만 15번이나 언급되는 중요한 요새입니다. 고넬료는 이 도시에 로마인으로 구성된 이달리야부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2-’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넬료가 기도하는 9시-우리시간으로 오후 3시-
천사로부터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바가 되었으니‘라는 음성과 함께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해오라-는 명령을 환상을 통해서 받았습니다.
성도에게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구제가 있어야 합니다.
 
고넬료가 환상을 본 시간은 오후 3시였습니다.
고넬료가 근무가 다 끝나고 퇴근해서 집에가서 자신이 본 환상을 말해주고 ’욥바‘로 나서는 시간은 늦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세 사람이 그 이튿날 12시에 욥바에 있는 베드로에게 도착했다는 것은 최소한의 시간을 쉬고 밤을 새며 최선을 다했다는 말씀입니다. 세사람이 한 일은 베드로를 모시고 오는 일 이었습니다.
2,000년 전 초대교회 시대에 히브리파 유대인이 이방인에 찾아가는 일대 사건은 이름이 없는 고넬료의 하인2명과 부하 1명에 의해서 시작 되었습니다.
 
 
2. 순종하였습니다.
가이샤라에서 욥바까지는 12시간 거리였습니다.
자기 하인 2명, 부하 1명을 욥바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병사- 경건한 사람, 그 세 사람은 고넬료의 명을 받드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모시고 와야 했습니다. 고넬료가 본 환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현실적인 환상이므로 욥바에 베드로가 있는지? 욥바의 바닷가 라고 하였습니다.
욥바는 항구도시이므로 바닷가에 가서 베드로를 모셔오라는 것은 비 현실적이었습니다.
가이샤라에서 욥바에 가서 모셔와라-
이 세 사람이 베드로를 청할 때 올지 오지 않을지 모르는 일 이었습니다.
명령은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가다가 중간에서 돌아가서 적당히 둘러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전쟁터인 엘라 골짜기까지 거리- 60리 거리. 다윗은 이새의 8째 아들.
이새가 전쟁터에 있던 아들들에게 다윗을 보내기로 작정
삼상17:17-18 이새가 전쟁터에 나가 있던 세 아들에게 다윗을 심부름, 곡식 한 에바,(12되) 빵, 치즈- 10덩이, 가지고 전쟁터로 가야했습니다.
심부름을 가야 한다면 넷째 아들이 타당 / 넷 째, 다섯째 여섯째가 아닌 막내 다윗에게 시켰습니다. 다윗만이 아버지 이새에게 가장 순종한 아들이 다윗이었습니다.
아버지 왜 접니까? 형님 중 한사람 보내시지요?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생애에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일까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일이 아니라
다윗이 일평생 가장 잘한 일은 아버지 이새가 전쟁터에 다녀오라고 했을 때 “예‘ 하고
심부름을 가게 된 일이었습니다.
심부름을 가서 비겁한 병사들을 보았고,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어느 장군, 어는 병사보다도 더 골리앗과 맞서 싸우려 했던 일이었습니다. 먹을 것 심부름은 머슴의 일처럼 보입니다. 나라를 구하는 일이 장수의 일이라면 음식을 나르는 일은 아주 작게 여기는 일일 수 있습니다.
다윗이 크고 자랑스런 일에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다윗은 위대한 다윗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만은 작은 일의 가치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골리앗이 질 수 없던 다윗에게 패배한 이유는 작은 다윗을 무시했기 때문, 골리앗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잠 16장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이니라’.
골리앗이 다윗을 결코 이길 수 없었던 것은 교만함 이었습니다.
 
3.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사역에 비한다면 세 사람의 일은 하찮은 일처럼 보입니다.
세 사람의 역할이 없었다면 이러한 역사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의 잣대로 볼 때 보잘 것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하게 됩니다.
이 세 사람이 없었다면 사도행전의 역사는 완성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찮은 것이라 해도 하나님은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잠15:33-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교만한 골리앗은 작고 겸손한 다윗을 결코 이길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작고 보잘 것 없어도 여러분의 생애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왜 다윗이었을까요?
3,000년 이전 다윗과 골리앗- 싸움. 신장 2m90cm, 놋 투구, 갑옷-57kg
,어깨에는 단창(의 무게-7kg), 방패든 자가 앞에 있었습니다.
반면에 다윗- 10대 소년. 갑옷도 없습니다. 다윗의 손에는 창이나 칼 무기도 없었습니다.
사울 왕 앞에 다윗이 삼상17:34- ’주위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다윗은 삼상17:40-’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 나아가니라‘.
골리앗은 방패든 자를 앞세우고 나오면서 다윗을 향하여 ’네가 막대기를 가지고 나왔느냐?
네 살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에게 주리라‘.
다윗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골리앗은 다윗이 던진 돌에 맞아 쓰러지고 순간 다윗은 이스라엘의 레전드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기록된 책은 룻기, 에스더서입니다.
에스더는 왕비인 반면에 룻은 유대인도 아니고 왕비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방 모압여인 – 룻이 잘한 일 / 과부가 되었을 때 과부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습니다. 룻이 얼마나 잘했던지 시어머니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보아스를 만나게 함으로 룻이 재가를 해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얘기를 낳자 시어머니는 물론 온 동네가 다 기뻐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느 누구나 할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얘기입니다.
 
룻기 4:14-22 / 이웃 여인들이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하나님의 종)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핏덩이 오벳이 손자 다윗을 낳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장차 태어날 다윗의 족보에 이름을 올려놓았습니다.
만약에 룻이라는 여인이 충실하지 않았다면 나오미가 보아스에게 룻이 만나도록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 개가하지 않았더라면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도 이스라엘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다윗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룻기 마지막 다윗의 이야기는 마태복음 1장 1절- 다윗은 예수그리스도를 연결시켜주고 있습니다. 적은 일에 충실했던 룻을 통해서, 심부름하던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은 존귀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도, 한사람의 역사도 시시하더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갈릴리호수를 중심으로 디베랴, 막달라, 벳새다, 가버나움, 고라신, 마가단, 거라사, 동벳세다, 유리아등 9대도시가 있었습니다. 최소 촌락이라 하더라도 인구가 1만 5,000명이상 온 갈릴리 인구의 수는 300만 명 이상 살았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는 벳새다의 어부로 원래는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베드로에 비교한다면 안드레는 별 특별한 일이 없어 보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먼저 만나고 자기 형 시몬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요1:40-’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주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하고 (메시야를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벳새다 광야에서도 어린아이의 도시락인 오병이어를 찾아와서 예수님께로 가지고 온 사람이었습니다. 요6:8-9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유대민족 중심의 기독교에서 세계적인 기독교로의 전환하고자 베드로와 고넬료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고넬료의 하인2명과 부하 1명을 사용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세워주신 자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자리임을 알게 하옵소서!
고넬료의 하인2명과 부하 1명, 고넬료처럼 베드로처럼 순종하게 하옵소서!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지극정성으로 돌봄이 장차 다윗을 잉태하는 가치 있는 길이었음과 같이, 다윗이 전쟁터에 심부름 가는 일이 보잘 것 없어 보임에도 가치 있게 만들어주심 같이, 욥바의 시몬 베드로를 고넬료의 집으로 모셔오는 심부름이 유대민족을 넘어 세계로 향하는 복음의 출발점으로 교회 역사의 최고의 전환점으로 가치있게 만들어 주심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가치 있게 사용되고 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피하고 십은 작은 일을 피하지 않고 실천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202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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